그릇된 인간의 그릇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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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미루고 미루다가 며칠에 걸쳐 써버렸네.

스포일링이 많은데 식스센스처럼 알고 보면 하나도 재미없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 (...)

여튼 당하기 싫은 분은 영화 보고나서 후기 읽으시길 ㅋ

영화는. 잼있다 (...)

네이버 평점 검색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9.33으로 짱을 먹고 있다 ;

역시 픽사 킹왕짱.

막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씬을 만들어낼 줄 알고

그러면서 재미있는 스토리도 만들어 낸다는 게 대단하다.

3박자가 맞는달까.

소비지향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던 인류는

지표면을 폐기물로 덮어버렸고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버린다.

그래서 액시엄이란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서 지구를 떠났다.

액시엄에서 인류는 여전히 소비지향적인 문명을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에 길들여져 수동적인 성격이 된 것은 물론

몸이 지나치게 뚱뚱해져서 혼자서 잘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Wall-E에선 약간 비판의 대상으로 표현된다.

디스토피아.

하지만 스토리가

비록 로봇들 사이의 사랑이긴 하지만 즐거운 남녀의 끌림에 의해 진행되고

인류의 모습이 꽤 코믹한 모습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제작진이 그런 걸 의도한 것 같지도 않고.

이 영화는 정말 괜찮은 영화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Wall-E는 폐기물 처리 로봇이다.

(Wall-E :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지구를 이렇게 만든 인간들마저 모두 떠나버린 지구.

Wall-E는 홀로 남겨져 쓰레기를 정돈하고 있다.

이때 액시엄에서 지구로 파견한 식물 탐사 로봇, 이브가 나타난다.

△ Wall-E와 이브.

Wall-E는 꽤 고전적인 로봇이다. 태양열로 에너지 충전을 해야 하고 궤도 바퀴로 이동하며

로봇 팔로 쓰레기를 주워 담아 압축하는 간단한 기능 밖에 없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생긴 것도 꾀죄죄하다.

반면 이브는 최신형 로봇이다.

무려 날아다니(!)며 아이언 맨에 나오는 아크 원자로라도 달았는지 에너지도 거의 무한하다.

엉망이 된 지구가 식물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회복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구에서 식물을 찾아오는 것이 이브의 임무이다.

근데 왠지 몰라도 강력한 파괴광선-_까지 쏠 수 있다!

외형도 애플사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하는 깔끔하고 매끈한 모습!

우우.

그렇다.

Wall-E와 이브는 태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출생 신분부터 능력, 직업(?), 외모까지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Wall-E에게 이브는 쳐다보기도 힘든,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존재이다.

이브를 만든 개발자가 가부좌를 틀고 "내 이 결혼 반댈세."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근데도 지구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던 Wall-E는 이브를 보자마자 좋아해버리고

끝내 이브의 마음을 얻어낸다.

이는 신분 차니 능력 차니 해도

Wall-E가 진심으로 이브를 좋아했고,

그 진심을 이브에게 전하는 게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오.

그렇다.

이 영화는! Wall-E는!

남자가 아무리 캐찌질해도!!

잘 하면 잘 된다!!

...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태그에 "지질지질"을 추가할 수밖에 없군ㅠ

음. 사실 Wall-E가 이브 손 한 번 잡아보려고 가슴 졸이며 조심조심 해보다가

번번히 실패-_-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굉장히 낯이 뜨거워졌었다.

내가 했던 짓이랑 똑같아서.

킥킥.

픽사답게 장면 하나하나가 다 멋지고 이쁘지만

가장 감명깊었던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우주에서 키스씬-_ 이후 이브와 Wall-E가 같이 날아다니며

긴 꼬리를 만드는 그 부분을 꼽겠다.

△ 하얀 꼬리가 Wall-E의 소화기 흔적. 파란 꼬리가 이브의 푸른 빛.

위의 장면은 그렇게 같이 날아다니다가 액시엄의 끝 부분으로 가는 장면인데

액시엄 엔진이 폭죽 터지듯이 화려한 빛으로 솟아오르고 Wall-E와 이브는 그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며 절정의 장면을 이루는 부분이다.

... 물론 당장 위의 장면을 볼 때

"헛, 저 근처로 가면 엔진 열 때문에 다 타버릴 건데."

... 하는 걱정이 든 건 엔지니어로서 정상이겠지?

엔지니어-_로서 걱정한 것은 또 한 가지 있는데.

중간에 액시엄에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우주 밖으로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Wall-E랑 똑같이 생겼는데 훨씬 큰 거대 Wall-A가 Wall-E가 하는 것처럼

폐기물들을 정육면체로 압축해서 버린다.

액시엄이 700년 동안 지구 밖에서 떠돌았다고 해서 지구에서처럼 폐기물이 난무하지 않게

완벽한 재활용 체제를 갖추었나 했었는데 이 장면에서 인류는 여전히 소비지향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걱정한 건 소비지향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700년 동안 저렇게 엄청난 폐기물들을 버려 왔으면

당연히 액시엄을 유지하는데 쓸 자원이 고갈되어 버리잖아!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지인 블로그의 Wall-E 후기 글에도 똑같은 지적이 있더라.

뭐 지금은 이브처럼 외부 탐사 로봇도 보내고 하는 걸 보면

액시엄이 단순히 현상 유지를 위한 체제만 있는 게 아니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자원 탐사 로봇과 채취 로봇도 아마 있지...싶다.

액시엄을 만든 사람들은 천재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인류가 지구를 떠나 700년 동안이나 멸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인가!

(비록 알 수 없는 부작용으로 세대가 갈수록 인류가 비대해지긴 하지만)

게다가 지구가 회복되었을 때를 파악하고 귀환하는 체제까지 이미 갖춰져 있다니!

철저하다.

(비록 빠른 시간 안에 지구를 회복시키는데 실패해서 오토와 선장의 갈등을 만들긴 하지만)

참. 이건 좀 특이한 의견일 것 같은데.

감정표현이 풍부한 이브도 좋지만(눈 하나로 저정도 표현이 가능하다니!)

700년간 액시엄을 이끌어 온 오토도 좋다.

△ 왼쪽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애가 오토.

인간인 선장을 보좌해서 액시엄을 운용하는 것이 오토의 임무이다.

비록 영화에선 붉은 빛을 내뿜으며 이브가 찾아온 식물을 없애버리려 하고

선장을 감금하는 등 나쁜 놈으로 그려지지만

따져보면 얘가 결코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액시엄을 만든 사람들은 지구가 회복되었을 때

액시엄을 귀환시키기 위한 체제를 미리 만들어 두지만

곧 지구를 회복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그 체제를 포기하고

지구에 올 생각은 하지 말고 영원히 궤도를 돌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이 바보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70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융통성 없이.

알고보면 꽤 멋진 놈이 아닌가 -_-!

역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헐퀴 쓰다보니 왜 이리도 긴가.

결론 : Wall-E 잼있으니 꼭 보셈. 훈훈한 내용이니 여친 남친과도 강추.

  1. 꼬마 2008.08.23 03:13 Modify Delete Reply # 스포일러쟁이..흥.미워요.
    Dish 2008.08.23 13:35 Modify Delete # 어쩌다보니 ㅎㅎ ;
  2. 2008.08.24 00:22 Modify Delete Reply # 흥 잡길얘기따위.. 는 훼이크고
    영화의 결론이 뭐지
    Dish 2008.08.24 13:09 Modify Delete # 지구 인간 잡길 만세
  3. 오양 2008.08.24 23:30 Modify Delete Reply # 1. 아무리 남자가 캐찌질해도 잘하면 잘된다

    -> 영화처럼 단 한명씩만 남았을경우엔 오크남-김태희도 잘된다ㅋㅋㅋ


    2. 초반 상황은, 완전 라디오헤드 creep가사ㅋㅋㅋㅋㅋㅋㅋㅋ

    you're so fucking special..ㅋㅋ
    Dish 2008.08.25 14:42 Modify Delete # 1. 똑같이 생긴 다른 개체도 많은데 말이지 ㅋ
    역시 경험의 공유란 중요한 것인 듯.

    2. 헐 거기서 크립을 떠올리다니 센스
  4. 2008.08.25 09:58 Modify Delete Reply # 우리나라 만화나 애니계에서 그렇게 울부짖는 '우리도 기술력은 있는듸 기술력은 뒤지지 않는듸 해외에서 기술력은 인정받았는듸' 하는 소리가 얼마나 허무한 소리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함. 내가 당신들 테크데모 볼려고 극장가는건 아니잖수. 결국 기술력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한데 말이지 -_-
    쓰레기를 분자 단위로 분해 한다음에 재조립하는 시스템 같은거라도 있지 않는한 폐기물이 조금씩이라도 생기기는 생길테니까 버리기는 버려야겠지 -_-)a 자원 채취도 어떻게든 하고 있다는게 옳을듯. 근데 이런 감성적인 영화보면서 그런 생각 하지마 임마...
    Dish 2008.08.25 15:18 Modify Delete # 파이널판타지 보면 일본도 비슷한 삽질 하잖냐 ㅋㅋ
    원더풀데이즈가 한국판 파이널판타지 꼴이지.
    이성과 감성의 결합이 필요한 건데 쉽지 않은 듯.

    ... 그런 생각 드는 내가 어쩌겠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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