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멋진 신세계』는 과학과 정치가 고도로 발달한 가상 사회가 등장한다. 야만인 존과 이 사회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몇몇 구성원들은 이렇게 틀이 짜인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부른다. 과연 디스토피아란 말을 들을 만큼 이 사회 체제는 잘못된 것일까?
이 사회는 비록 궁극적인 이상 사회, 유토피아는 아닐지 몰라도 존의, 오늘날의 사회에 비해 인간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사회를 인간에 맞추고 인간을 사회에 맞춘, 맞춤형 사회이다. 이 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욕구 충족과 행복의 극대화, 그리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목표는 잘 달성되었으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소설 본문에 나오는 말처럼 실제로 이 사회 구성원은 모두 행복하다.
알파 계층을 상류층, 입실론 계층을 하류층이라 보기 쉬운데 이는 오늘날의 보편적인 사회관으로 보았을 때의 얘기로 실제론 계층 간 구분만이 있을 뿐 어느 쪽이 우월하고 못하다는 가치판단은 없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며 똑같이 존중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위해서 일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입실론도 쓸모가 있다. 우리는 입실론 없이는 살 수가 없다." - 알파 계층 수면교육의 일부
모든 계층이 다른 계층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정도 있으나 그것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만족하기 위해 교육된 것으로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 자신보다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박탈감,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혐오감, 거기에 따라오는 적대심과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는 자유를 원하고 진취적인 사람도 있는 반면 주어진 자유에 어찌할지 몰라 하는 수동적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능력 역시 모두 천양지차이다. 이 사회처럼 명시적으로 사회계층을 나누어 놓은 곳은 오늘날의 사회에선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런 사람들 간의 차이에 의해 사실상 모든 사회가 암시적으로 사회계층이 나뉜다. 차이가 있다면 소속 계층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욕구란 것이 이 사회에 비해 많이 있는 편이고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상류층이라 불리는 선호 계층으로의 계층 이동을 원한다. 하지만 사회가 제대로 운용되려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능력의 적합성에 따라 계층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의 욕구와 능력의 괴리 때문에 생긴 것으로 필연적으로 불만과 불행을 불러온다.
이 사회가 계층을 나눈 것은 사람들 간의 능력, 욕구차를 인정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이 사회는 태생부터 욕구와 능력을 조절해 계층에 맞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법으로 필요한 사회계층을 확보함과 동시에 욕구와 능력을 일치시킴으로써 위와 같은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또한 이런 계층의 구분은 굉장히 효율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다. 오늘날의 사회에선 보통 학교란 기관에서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이 욕구와 능력은 거의 교육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굉장한 지적 학습 능력과 욕구가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지적 활동에 관심도 없는 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다. 어떤 사람은 수업에서 많은 것을 얻고 성취감에 행복해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은 특히 사회 체제가 열악할수록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 사회는 애초부터 능력과 욕구를 계층에 맞게 만든 다음 계층별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흔히들 말하는 맞춤형 교육의 극단이 이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존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사회를 강력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안타깝게도 존을 정말 교육이 부족한 야만인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존 역시 어떤 사회의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느끼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자신이 배운 사회의 방식만이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라는 판단은 많은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한다. 앞서 알아봤듯이 이 사회가 추구하는 바가 나쁜 것도 아니며, 그 방식이 논리적으로 그릇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논리로 이 사회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읽어본 적은 없으나 대학 입시 공부에 따르면 적어도 작가의 의도는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로 알고있고
나같이 플라톤 정치론의 기본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은, 계층사회야말로 진정 멋지고 효율적인 것임.
물론 역사적으로 검증된 계층사회는 기득권의 폐쇄성에 의해서
대부분 혈통체제(귀족)로 변질되면서 비효율적이 된다는게 문제점임.
ㅇㅇ 어떻게 보면 지금 사회는 비효율성으로 몰락한 계층사회 이후에
좀 더 나은 새로운 계층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음.
애시당초 모든게 효율적이면 다 좋겠지만..... 그게 제일 문제 아니겠어
효율을 별로 안 추구하는 사람도 세상엔 많더라고
흠, 각 개인이 느끼는 욕구와 능력의 갭 . . . 일전 한 드라마에서 본 남자 이야기, 지지리 궁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운건 없으면서도 잘생긴 용모와 언변으로 야망을 불태운다. 몰락한다. 절규한다." 하나님, 제가 그냥 그렇게 살 운명이면 왜 이토록 큰 야심을 주신겁니까! 야심을 품게 하려면 그걸 이룰 수단도 주셔야하는거 아닙니까!!!"
인문학에서 시지프스의 신화 맹키로 굴러 떨어질 걸 알면서도 언덕위로 바위를 굴러 올리고 추락하면 또 다시 올리고, 그러면서 그는 강인해 지고 . . . 멋진 신세계에서 처럼 일찍부터 재단 된 삶을 사는 거는 한마리의 '개천의 용'을 나올 수 없게 하기에 '디스토피아'라 하는게 아닐까?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잘 모르는 위대하다는 그 자유의지라는거, 그걸 자의로 포기하는게 아니라 원초적 봉쇄를 당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ㅋㅋ 반동분자들이 맹가는 변수 덕에 인류의 진화가 가능한게 아닐까?
개천의 용 안 나면 뭐 어때, 용이야 알파에서 많이 나올 건데~
플라톤 정치론에서는 10살때 부모를 떠나 모두 정부 주도의 아카데미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되고
이 아카데미의 평가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생산계층과 군인계층이 나뉘고 통과한 일부 아해들이
통치계급이 되서 열심히 철학공부 서바이벌을 지나고 한 5~60살쯤 되서야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천의 용'에서 '개천'을 원천봉쇄한 이상론이죠.